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군 위안부 (문단 편집) === 한국 부정파의 주장 === 한국에서 부정파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주장하고 있다. 보수논객 [[지만원]]은 '최근 TV에서 보이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지나치게 건강하다', '최근 TV에 나오는 위안부 할머니들은 연세가 그렇게까지는 많아보이지도 않고 건강도 매우 좋아보이며 목소리에도 활기가 차있는 분'이라고 주장하면서 매주 수요집회에 나가고 있는 위안부 생존자들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974661|진짜 위안부가 아닐 가능성]]을 제기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피해자다움'을 논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는 발언이다.] 기사 내용에 따르면 지만원은 "종군위안부 가운데 '진짜 일본군 위안부'를 가려내는 일이 얼머나 어렵겠느냐"면서 "종군위안부들이 대개는 '노인이 돼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당한 건 사실이다'라며 우기는 경우가 많다"라며 위안부를 '일본군 위안부'와 '종군 위안부', '정신대'로 구분한 뒤 '진짜 피해를 본 '일본군 위안부'는 전체 20% 정도이며 어려운 형편에 스스로 성(性)을 판 종군위안부가 80%쯤 된다더라'고 주장했다. 또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위안부 문제를 해부한다(상)'라는 제목의 글에서 "1944년 당시 15세 이상의 여성이었다면 지금은 최소한 78세 이상이 돼야 하고 현재 몸도 건강하지 못하다는 게 진짜 할머니의 증언"이라며 지난해 11월 일본 대법원에서 6하 윈칙에 따라 확실한 '일본군 위안부'였다고 인정받은 할머니는 단 1명으로 이 할머니가 인정하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는 33명인데 이 가운데 시위에 나가는 할머니는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위안부에 대한 배상 문제를 따지기 전에 위안부들의 부정확한 증언도 지적했다.[* 지만원이 이런 이상한 소리를 할수 있는 근거는 아시아 여성기금 관련 문제로 위안부 피해자와 정대협간의 대립이 있기 때문이다. 지만원이 말한 이 33명의 피해자는 일본의 아시아 여성기금을 받음으로서 어느정도 문제해결이 되었다는 입장이었지만 이는 정대협내부 수뇌부의 의견과는 많이 다른 상황이었으며 돈을 받은 피해자에게 창녀라고 하는 등의 폭언을 가했으며 이에 33명의 피해자들은 정대협이 자신들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운동권이 정치세력을 만들기 위한 조직이라고 여기게 되었으며 무궁화 할머니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정대협과 대립하게 되었지만, 자신들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고 이와중 지만원이 그 33명의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주게 되어 뉴라이트라는 낙인과 함께 철저히 이용당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된 사례로 지만원은 "가짜 위안부가 북한의 사주를 받은 이들의 돈 받고 시위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발언은 명예훼손죄로 고발당해서 지만원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단 각주로.] ||<:> [youtube(fC9L2CMZVcA)] || ||<:> [[뉴라이트(대한민국)|뉴라이트]] 안병직(서울대학교)의 위안부 강제연행 부정 || 안병직 [[뉴라이트(대한민국)|뉴라이트]] 재단 이사장은 한국이고 일본이고 객관적인 자료는 하나도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안병직은 "일제강점기 정신대는 강제동원이 아닌 자발적 매춘이었다"라고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81129009011|주장]]하여 파문을 일으킨 바가 있었는데 위안부 생존자가 안병직이 특강을 하는 서울 인창고를 찾아가 교문 앞에서 시위 형식으로 통곡하기도 하였다. 현재 안병직은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동원을 했다는 책을 [[http://book.naver.com/bookdb/publisher_review.nhn?bid=7285578|출판]]한 것을 보니 생각이 바뀐 듯하다. 또한 이들은 1991년 당시 일본 총리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피해보상기금을 제의했으며 대부분의 위안부는 그것을 받아들였으나 오직 현재 수요집회를 주도하는 자들만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몇 십억 엔 가량의 규모였고 일본 총리의 사과문이 들어있었다고 주장했다. 해당 기금은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으로 1991년이 아닌 1994년에 총리의 [[고노 담화]]로 구체화되었고 1995년에 출범하였다. 이는 일본 총무성과 외무성이 관리하고 [[일본 정부]] 예산 약 5억 엔과 일본 국민의 모금 5억 엔을 합친 10억 엔 규모의 법인이었고 배상액은 1인당 2백만 엔 정도였다. 하시모토 당시 일본 총리의 사과문이 포함되어 있던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위안부 피해자 61명이 보상기금을 수락했으며 이들이 '정당한 보상과 사과를 받지 못한 위안부'라는 대중의 인식 속에서 잊혀진 것, 그리고 이들의 입장이 현 위안부 문제를 주도하는 단체들에게 '변절자'로 무시당한다는 지적 자체는 사실이다. 물론 [[일본 정부]]는 위안부에 대해 한일기본조약으로 배상이 '끝났다'는 입장이었으며 법리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사항이 아니다.[* 말하자면 '아시아여성기금'이란 그런 상황에서 전후청산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무라야마 정부가 차선책으로 만든 것이었다. 당연히 아시아여성기금은 보상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우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일본의 진보, 보수 양쪽의 비판을 받으며 사업을 실시했던 것이다. (중략) 말하자면 자민당 의원의 숫자가 3배나 되는 국회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입법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던 상황에서 '국회'를 제치고 '정부'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 '기금'이었다. 다시 말해 '기금'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임을 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다만 그 주체가 국회가 아닌 정부였을 뿐이다. -제국의 위안부 中 인용.] 다만 국제 NGO인 엠네스티에서는 '일본이 1995년 설립한 아시아 여성기금은 국제적 배상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며 국제적·법적 책임을 교묘하게 피해가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 외에도 여러 국가의 일본군 위안부 출신자들이 이 기금의 수령을 거부한 바 있었고 2007년으로 아시아여성기금은 활동을 종료하고 해체했다. 그러나 반대로 실제 피해자중 61명이 이 기금을 수령한 것, 그리고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인 것은 사실이다.[* 박노자 역시도 한국 내에서 위안부 문제가 가지는 민족주의적/(순수한 의미에서의) 반일적 모순들을 공격한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를 간략히 평하며 '어쨌든 제가 박유하씨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못해도 일본의 '국민기금'을 1990년대 후반에 받은 61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난한 국내 시민 단체나 언론을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외에도 일본군 위안부의 주된 비판단체로 나서는 정신대대책협의회[* 이후 정의기억재단과 통합해 정의기억연대로 재편.]의 몇몇 주요 간부가 [[조총련]], [[범민련]], [[조평통]] 등 [[북한의 대남공작기관]]과 관련된 [[종북주의자]]들이 주도하는 단체이며 수장인 [[윤미향]]도 저들 단체와 간접적인 연관이 진하다는 주장들도 일부 있다. 그리고 [[종북몰이|서술방식이 남한보다는 북한 입맛에 맞게(?) 자극적인 서술방식에 호소한다는 주장들]]도 일부 있다.[* 이러한 비판점이 반영된 극우언론 기사의 [[http://www.blue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11949|예시]]. 단 이 극우언론사는 [[최순실 게이트]] 이후 극심한 박근혜 옹립 성향을 보이고 있으니 이점은 걸러서 읽을것. 비슷한 주장을 한 지만원은 기소당해서 2019년 징역 1년과 벌금형을 2심에서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2&aid=0002103136|선고받았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는 극우들 사이에서도 주된 논거로 많이 써먹지만, 정대협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종북성향의 단체'라고 보는 시각은 단순 보수성향의 회의론자들 사이에서도 가끔식 보이는 주장이다.[*반론 반론측에서는, '정대협 종북설'을 주장하는 세력들이 주로 주장하는 근거가 '김삼석-김은주 남매 간첩단 사건'이라고 하는데(윤미향 문서에도 언급되어있다), 남매 간첩단 사건은 훗날 정부에서 시인한 '''공안조작 의혹 사건중 하나'''라는 점을 들어서 그들의 종북설을 논파하는 역논거로 쓰고 있다.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26983|관련 기사]],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524|남매 간첩단 사건에 대한 진보언론 참세상의 기사]].]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에서 나온 일본군의 특성이 실제 일본군의 특성과 다르며 헬리콥터 부대의 존재, 지프차 운용, 영어 사용, 크리스마스 풍습, 군복하의에 붙어있는 지퍼, 한국전쟁 광경 거론등을 비롯한 기술적으로도 시대적으로도 10~20년 차이가 나는데다 미군의 특성이며 몇몇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에서 나온 일본군의 특성이 실제 일본군(예를 들면 일본군은 군복 특히 하의에 지퍼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단추를 사용했고 영어는 적성국의 언어로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과 일치하지 않고 오히려 2차세계대전 당시~한국전쟁까지의 미군을 가르키고 있다는 것과 일본의 동남아시아 점령연도에 대한 증언의 고증오류(동남아시아가 일본에 점령된 연도가 1940년대인데 1930년대에 동남아시아로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증언)를 지적하는 내용의 [[http://blog.naver.com/zero53?Redirect=Log&logNo=220608491915|글이 있다.]][* 단, 해당 블로그가 증언의 한계를 정확히 지적해도 그것이 모든 증언이 믿을 수 없다거나 근거가 없다는 반증이 된다는 건 절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실제로 여러 증언들 중에서 일관성 있고 반증이 부족한 증언들은 신뢰성이 있어 위안부 실태의 증거들 중 하나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해당 블로그 자체가 전형적인 [[일뽕]]+[[혐한]][[극우]] 성향에다가 [[가짜뉴스]] 신봉, 자료의 취사선택, 왜곡마저도 자주 보이는 블로그이니 별로 신뢰하기에는 힘들어보이며, 열람시 주의를 요한다. 참고로 해당 블로그의 주인은 [[역사 갤러리]]의 거의 사상적 지주급인 사람이다. --심심하면 [[빨갱이]] [[전라도]] 타령을 하고 있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전후로는 [[음모론]]에 더 더욱 심취하여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부정선거 음모론|미국 대선 부정 선거론]]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 '''단''', 구 일본 육군은 '오토자이로'를 운영했는데, 그런 육군과 더불어 육군의 남방전선 전개를 전담한 육군선박사령부(船舶司令部)가 헬리콥터와 유사한 체계인 [[오토자이로]] '카호'를 관측기 및 대잠 초계기로 중국 및 필리핀 등 남방전선 일대에서 운영했다. 또한 1935년부터 지프와 유사한 [[95식 4륜 자동차]]를 운영하였기에 그 당시에는 해당 무기체계의 명칭을 몰랐으나 종전 이후 오토자이로를 헬리콥터로 95식을 지프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그 외에도 상술했듯 몇몇 위안부 피해자들의 실제와 다르게 과격한 쪽으로 번복되거나 부정확하고 고증에 맞지 않는 증언[* 하지만 기록도 남지 않은 몇 십년 전의 기억에 대해서 정확한 증언을 바라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일부 피해자들은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정말 끔찍하고 잊고 싶어하는 기억을 몇십 년 동안이나 일 단위로 정확하게 기억해서 증언할 수 있겠는가?([[PTSD]] 문서로.) 생존자들을 상대로 버마나 [[싱가포르]]를 헷갈린다고 공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심지어는 '이남이 피해자'[* [[마산]]에 살던 '이남이 피해자'는 17세이던 1943년 [[일본 경찰]]에 의해 납치되어 성노예로 끌려갔다. [[캄보디아]] 전선에서 일제 패망을 맞았으나 귀국할 방도가 없어 현지인과 결혼하고 캄보디아에서 살면서 [[킬링필드]]의 비극을 또 겪었고 한국어도 잊어버려 1997년 처음 한국 언론에 알려졌을 때는 '훈 할머니'라고 불렸다. 한국인임이 밝혀져 1998년 귀국하고 DNA 검사를 통해 아직 살아있던 여동생을 만났으나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캄보디아로 귀국했다가 2001년에 사망했다. [[https://news.v.daum.net/v/20040227042557866|해당 미디어]].]처럼 심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자신의 본명과 한국어까지 잊어버린 사례도 있다.[* 심지어 [[http://supil.or.kr/essay/talkbox/viewbody.html?partid=29&code=talkbox2&number=40053|카와베 마사카즈마저 위안부 범죄에 관련되었는 말을 하는 분도 계셨다.]] 참고로 말하지만 카와베 마사카즈는 '''[[죽음의 철도]]를 기획하고 만들때 공사도중 포로들이 힘들어하자 당황해하면서 공사를 중지했던''' 사람이다.(그때문에 [[도쿄 전범 재판]]에서 만장일치 무죄 판결받았다.) 게다가 내용을 보면 [[무다구치 렌야|그는 그 부관에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훈장이며, 다음으로는 메마(버마어로 여자)다.라고 말했다는 내용도 있다.]] 당연하지만 저 내용은 '''병사들이 사령관을 조롱하기 위해 만든 내용이지 지 입으로 직접 말했을리가 없다.'''] 실제로 [[홀로코스트]] 추모관의 경우에도 '피해자' 들의 증언을 기반으로 한 사건의 재구성은 명백히 한계를 드러낸 바 있다. 유대인이나 집시들 역시 트라우마가 심해 기억이 없어진 경우는 많다. ], 한국인 위안부 관련 국내 기록의 부재, 위안부 관련단체와 민족주의자들, 그리고 한국정부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치적 이용[* 한국내 부정파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위안부 관련 단체에서는 법적배상이 아니면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민족주의자들은 반일감정을 이유로, 한국정부는 국면전환용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정부가 은폐한 한일기본조약을 인지함, 일본군 위안부 관련 국내단체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인지함, 일본에 대한 위안부 문제제기의 배후에 종북주의자와 북한 정부 및 더 나아가 배후에 친중과 [[중국 공산당]]의 선동하고 있다는 반북중감정등으로 위안부 문제 부정파가 되는 사례도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북한의 경우 남남갈등과 남한의 정통성 폄하를 목적으로, 중국의 경우 한미일동맹을 분열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내에서 부정파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정작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할힌골 전투]] 때문에 위안부, 징용 등 과거사 문제는 일본을 두둔한 게 함정. 그렇다면 북한으로 넘어간 위안부가 한국 쪽 위안부보다 덜 부각되는 이유는 뭔데?][* 그러나 국내의 위안부 문제제기가 마치 국내 종북세력이나 반서방독재국가의 정치적 음모로 치환하는 것도 문제고 이것이 어느정도 사실이라고 해도 특정세력이 위안부 사건을 이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없는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난징대학살을 다루는 중국정부의 행동을 보면 일본군의 만행에 치를 떠는 제 3자가 보더라도 공산당의 프로파간다적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고 시대의 아픔을 본인들의 정치적모순(일당독재)을 가리는 곳에 쓰고 있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난징대학살 부정파의 한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 이후에 그간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위안부 문제로 일본을 공격해왔던 관행에서 벗어나 일부 [[극단적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부정파가 등장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그간 적어도 정치권에서는 진보 보수 할 것없이 모두가 이득인 문제였지만 합의 이후로 조금씩 변화할 여지가 보인다. 이것은 향후 한국의 부정파 움직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박근혜 탄핵 이후 범보수세력에서 위안부 합의를 잘못된 합의로 여기는 경향이 대세가 되고 대선후보도 파기를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다시 예전의 국공합작(?)으로 돌아갈 경향도 있다. [[역사 갤러리]] 및 여기서 파생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마이너 갤러리]]에서는 이거 자체가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라, 논란을 확산시키지 않기 위해 ㅇㅇㅂ 등의 [[초성체]]로 돌려말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2022년]] 이후부터는 대놓고 매우 극단적인 혐오발언을 동원해 가면서 최대한 악랄하게 비하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